[청로 이용웅 칼럼] 문학작품을 통해 본 기차(汽車)와 남북철도 연결

기사입력 2018.07.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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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철도시험운행. 2007년 5월 17일.jpg
남북철도시험운행. 2007년 5월 17일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산모롱이 고지에 별안간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는가 하니 시꺼먼 물체가 씩씩거리며 산허리를 꺾어 돈다. 기차다. 가로 놓인 신작로 한 복판의 레일을 타고 기차는 정거장을 바라보았다. 뀌익 소리를 냅다 지르며 숨이 찼다.”/ 평안북도 선천(宣川) 출신으로 <백치(白痴) 아다다>를 쓴 소설가 계용묵(桂鎔默/1904∼1961)의 <바람은 그냥 불고>(1947년)의 한 대목입니다. 그가 쓴 <백치(白痴) 아다다>는 1935년 <조선문단(朝鮮文壇)>에 발표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발표된 작품 중에서 ‘기차’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작품에는 유진오(兪鎭午/1906~1987)의 <화상보(華想譜)> 등이 있습니다. 1939년부터 1940까지 <동아일보>에 발표된 <화상보> -“수원역 플랫폼에서 한 사나이가 대륙행 특급을 기다린다. 그가 곧 장시영이다. [오후 사십오 분 착 경아] 그는 다시 포켓에서 전보를 꺼내어 본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바로 그 전보를 친 여인이다...수원역에서 차가 멎자 시영은 특급 열차에 오른다. 경성역에 도착하기까지 경아와 동행하기 위해서다.”-

 

문학작품의 ‘기차’에 대한 말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많고 다양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나는 여행할 때 반드시 나의 일기책을 가지고 간다. 왜냐하면 기차에서 읽을 감각적인 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했고, 소설가 김동리(金東里/1913~1995)는 “그의 머리 속에는 내리막을 달리는 기차가 떠오른다. 최종열차다. 땅 끝까지 가서는 바다에 빠진다는 것이다.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기차는 목이 쉬도록 울며 발목이 휘어지도록 뻗대어 본다.”고!

 

지구촌의 남녀노소(男女老少) 중 많은 사람들은 ‘기차’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낭만적인 사람들은 기찻길 옆 꼬불꼬불한 시냇물에 몸을 실고 달리기도 하고, 낭만열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상상도 합니다. 철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필자에게는 유난히 기차에 대한 추억이 많습니다. 피난열차, 통학열차, 알프스등산열차, TGV프랑스열차, 유레일패스유럽열차, 시베리아야간열차, 신칸센(Shinkansen), 그리고 KTX 등등. 필자에게는 기차가 행복한 추억이며 낭만입니다.

판문점 남북 철도협력 분과회의. 남측 평화의 집. 2018년 6윌 26일.jpg
판문점 남북 철도협력 분과회의. 남측 평화의 집. 2018년 6윌 26일

 

우리 철도청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철도의 역사는 1896년 3월 29일 미국인 모스에게 경인철도 부설권을 허가해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899년 9월 13일 궁내부 내장원에서 서북철도국을 설치함으로써 철도행정이 시작, 1906년 7월 1일 일제통감부에 의해 설치된 철도관리국이 철도업무를 담당,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 후에는 총독부 철도국, 1945년 8·15해방 후에는 미군정청 운수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후에는 교통부에서 담당하다가, 1963년 9월 1일에 독립채산제를 채택하고 특별회계로 운영되는 외청인 철도청으로 독립했습니다. 그리고 철도청 발족 이후 1967년 증기기관차의 운행은 종료되었고, 1973년 전기 기관차 운행이 개시되었습니다.

 

그 역사 속에 6.25전쟁이 있었습니다. ‘6.25’는 한반도를 황폐화시켜 600만 명이 넘는 인명피해와 1000만 여명이 넘는 이재민을 남겼고, 철도·도로·교량·항만 등이 파괴되어 사회 경제적 기반이 크게 흔들려 큰 피해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휴전선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철도 등은 여전히 단절되어 있습니다. 동해선은 1950년에 끊겼고, 경의선의 경우 1951년 6월12일 서울-개성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동안 북한은 경의선을 평부선(개성-평양)·평의선(평양-신의주)으로, 함경선을 강원선(고원-평강)·평라선(평양-나진)·함북선(청진-나진)의 구간으로 나누는 등 해방 전의 철도망을 개편해 기본 철도망으로 삼고, 삼지연선(혜산-삼지연)·청년이천선(세포-평산)·북부내륙선(만포-운봉-혜산) 등을 신설했습니다.

필자의 추억과 낭만이 깃든 기차.jpeg
필자의 추억과 낭만이 깃든 기차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 2007년 5월 17일(목), 남북 열차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휴전선을 넘어 끊어진 한반도의 맥을 이었습니다. 문산역에서 출발한 경의선은 버스로 남측을 먼저 방문한 북측대표 50명과 남측대표 100명을 태우고 51년 6월21일 이후 56년 만에 휴전선을 넘었으며, 동해선은 오전에 버스로 휴전선을 넘은 100명의 남측대표가 북측대표 50명과 함께 1950년 한국전쟁 이후 57년 만에 제진역을 향해 남방한계선을 통과했었습니다. 경의선의 경우 1951년 서울-개성 운행이 중단된 이후 56년 만에, 동해선은 1950년 이후 57년 만에...군사분계선(MDL)을 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때 남한의 언론은 “남북열차 시험운행이 갖는 의미 가운데 경제적으로는 철길을 열면서 남북 물류 인프라 완성에 한 발짝 다가섰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2000년 남북 직항기가 하늘 길을 열었고 2003년 '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임시도로 통행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잠정합의서'로 육로를 뚫었고 2005년 8월 남북해운합의서로 바닷길을 연데 이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었습니다. 또한 “철도로 물자 뿐 아니라 승객 수송까지 가능해진다면 남북 간 접점을 넓히고 남북경제공동체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고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한반도종단철도(TKR)가 러시아횡단철도(TSR)나 중국횡단철도(TCR) 등 대륙철도에 이어진다면 한반도가 해양과 대륙을 잇는 허브 역할을 하게 되면서 동북아 물류중심 국가를 향한 꿈을 실현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었습니다.

 

남북이 2018년 7월 20일 동해선 철도 연결구간을 공동점검 한 데 이어, 7월 24일에는 경의선 철도 연결구간에 대한 공동점검에 나섰습니다. 우리 측 공동점검단 15명은 이날 오전 경의선 육로로 방북해 북측 점검단과 함께 경의선 연결구간 가운데 북측 구간을 점검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한반도 분단 이후 철도는 단절되어, 한때 대륙철도의 한 축이었던 남한의 경의선, 경원선은 수도권 외곽지역의 미미한 여객수요를 처리하는 지선으로 전락되었습니다. 북한에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꼭 연결되어야 합니다.

 

7월 27일! 북한은 ‘6·25’를 조국해방전쟁으로 부르고 있고, 1973년 휴전협정 20주년부터 휴전협정체결일(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로 제정한 데 이어 1996년 43주년에 이날을 국가적 명절인 전승절로 제정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일부 단체들은 벌써 ‘통일열차’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희망사항’은 좋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하게 오르는 지혜가 절실(切實)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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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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