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회] 정치적 무관심의 결과는 거대한 ‘퍼펙트 스톰’으로 자멸한다.

기사입력 2019.11.1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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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여야의 전투와 장 내외 좌와 우의 이념대립은 멈출 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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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권오은 취재부장

 
[선데이뉴스신문=권오은 취재부장]부모는 똑똑한 자식에 대한 신뢰로 희망을 희망의 신념을 갖는다.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옛날 한국의 어머니들은 장독대 위에 정수를 떠놓고 두 손으로 빌었었다. 그것도 새벽아침에 온몸을 깨끗이 씻은 후 빌었었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법 없이도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인간은 짐승들과는 달리 지혜롭기 때문에 도덕적인 양심으로 과욕은 억제해가며 사회적인 생활을 해간다. 진실은 언제나 과정이 쉽지 않다. 현실이 어지러울 때 신뢰가 무너지기 쉽고 신뢰가 무너지면 혼란의 보자기가 진실을 덮는다. 하지만 아무리 힘이 들어도 진실은 언제나 사람의 곁에서만 존재한다. 신뢰가 무너지고, 넘쳐나는 과욕이 진실을 묻어버리면 자신의 화가 스스로 온몸에 퍼지게 되어 고귀한 생을 자신 스스로 마감하는 비극을 주위에서 보면서도 인간들은 반복한다.

 

인간의 머리는 가끔 짐승의 본능적 행동으로 되돌아가려하기도 한다. 억제 되지 못한 행동은 분노로 폭발하게 되는데 이것은 감정이 이성을 앞서기 때문이다. 절제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타고난 유전적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도 한다. 인간의 지혜로운 사고(思考)로 논리적인 판단을 하고 응용하는 머리는 지식으로 만들어 진다. 논리적인 판단에 의해서 지혜로운 사고와 행동으로 작동되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논리적 사고, 도덕적인 양심의 정(正)의 사고가 부(不)의 논리적 사고로 이용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큰 문제이다. 정의 사고를 넘은 부의 사고가 결국 합의 사고로 변화하는 궤변적 사고가 넘쳐나고 있고 이를 따르는 자들은 이를 정당화 하고 있다는 사회로 변해 감에 비양심적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어 안타깝다.

 

사욕과 아집으로 가득한 요술적 궤변이 젊은이들과 일부국민들에게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짓 여론과 언론, 거짓 선동자들에 의해 반복된 언어와 영상이 머리를 세뇌시키기 때문에 정(正)이 무너져 부(不)가 머리를 점령하게 때문이다. 결국은 큰 망신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현재에 부하면 된다는 나쁜 사고가 거짓된 쇼에 물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직 나와 나의 가족만 행복하면 된다는 신가족주의가 전체를, 미래를 닫아버린 것이다. 이것이 무관심이다.

 

나와 나의 가족 이외는 아무관심도 없다. 자기중심적 사고이다. 이들은 오직 법과 제도도 관심 없다. 불법을 합법으로 생각하는 비논리적 행동은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저렇게 뻔뻔스러울 수가 있어’ ‘이중인격자야’ 이런 말들은 그들에게는 들어오지 않는다. 정의 논리를 부의 논리로 만들어 새로운 합의 논리로 완성한 사고가 고착되어 있기에 나를 벗어난 영역에는 모두 무관심이다. 문제는 이런 무관심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나라가 무너져 가고 있는데도, 다수의 국민들은 웃을 힘도 울 힘도 없는 무기력 상태인데도 이들은 관심이 없다. 어쩌다가 나라가 이 꼴이 되었나,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하고 울부짖어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도 지식층들은 눈치만 본다. 젊은 학생들은 무관심이다. 관심을 던져버린 무관심이 마침내 ‘퍼펙트 스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음속에 있는 성, 즉 도덕과 윤리의 본성까지 무너지는 무관심에서도 꿈쩍도 않는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기까지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립은 지혜로움의 이(理)와 만물의 기(氣)로도 해석이 안 된다. 이념의 대립이다. 정말 무서운 이념의 대립이다. 흥하고 망하는 대립의 싸움인데 무관심은 파멸밖에 없다. 잘못 된 것을 알면 국민이 이를 바로 잡아줘야 하는 것이 관심이다. 이런 정치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세계 어느 나라이든 나라가 잘못되면 국민이 나서서 이를 바로 인도했다. 무관심이 아닌 관심은 대단한 파워를 가졌는데 그 파워를 보면 ‘언론파워’, ‘스투던트파워‘. ’블랙파워‘. ’우먼파워‘, ’종교파워‘, ’피플파워‘가 있는데 현재는 이들의 일부가 침묵이다. 침묵은 관심이 아니다 무관심이다. 나라가 망하든 흥하든 관계가 없는 것인가? 눈치만 보는 시간은 이미 지났다. 이 모든 파워는 ’퍼펙트 스톰‘이 오기 전에 정(正)의 파워 하나로 뭉쳐야 한다. 부(不)의 눈을 치료하여 정(正)의 눈으로 다시 깨어나 도덕과 양심이 살아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도덕과 양심이 살아있는 나라로 다시 태어나려면 제일먼저 언론이 바로 서야 합니다. 한쪽 편으로 저울이 기울면 안 됩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야 교회가 나라의 위태로움과 정치에 무관심에 등을 돌린다면 나라의 구원과 국민의 구원 그리고 세상의 구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가 의심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종교인들도 소신을 가지고 정가 부가 진실과 거짓이 구분 되는 현 실에서는 절대 무관심은 안 됩니다.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에는 앞장서야 한다.

 

그동안 사람을 구원한다는 종교가 정치에 관해서 침묵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이 아닌 것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다. 한국 사회에서 커다란 양심의 축을 담당해왔던 종교가 정치적 무관심을 미덕으로 삼으려는 현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 일반인들 역시 정치 무관심에 대해서는 비난 받을 일 또는 부끄러운 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학식 있고 교양 있으며 재력을 가진 사람들 상당수가 아직까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말 비굴하며 야비하다. 나라가 잘못되어 가면 나서야한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산을 보면 산이라고 해야 한다’. ‘산을 강이라 하면 강이 아니라고 나설 줄도 아는 용기가 필요할 때이다’

 

광장에 나가 정치 구호를 외치고 거리에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은 보면 박수 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적 관심입니다. 불평불만 자들은 값어치 없는 일로 시간을 축내며 쓸데없는 짓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공평하다. 결론은 정치에 관심을 가져 된다는 것이고 정치에 관한 사상은 거짓이 아닌 진실의 편에 선 도덕적 양심을 가진 사람의 편에 서야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일부 개신교도들은 시국선언에 동참했는데 대형교회는 침묵이다. 우리사회는 여전히 정치적 무관심이 고상하고 점잖은 삶의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유린되는 심각한 상황인데도 일부 대형 종교와 젊은이들 그리고 우먼파워들은 아직도 정치에는 대부분 무관심 하다. 특히, 정치적 무관심을 정당화한다는 종교, 이들을 보면 도덕적 생활은커녕, 올바른 종교부터 바로 세움이 절실하다. 정치적 무관심의 길은 곧 국가가 독재로 이어진 자멸로 가는 길을 앞당긴다는 것을 잊고 있어 걱정이다. 세상의 큰 비극은 ‘약하고 소외된 자들의 아우성이 아니라 가진 자들과 지도층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 이들은 지금, 닥아 올 거대한 ‘퍼펙트 스톰’을 정말 아는가? 모르는가?
 

 

[권오은 기자 kwon78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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