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완장시대와 준 자발적 줄서기의 슬픔에서 벗어나자

기사입력 2020.03.2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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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은 선데이뉴스신문 국장

 

[선데이뉴스신문=권오은 칼럼] 요즘 세태(世態)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갑자기 예전 MBC 베스트극장에서 윤흥길의 소설 "완장"의 주인공인 종술의 역을 맡은 조형기와 노란 완장이 생각난다.

 

 

 

 


동네 저수지의 관리를 맡은 동네 건달 종술(조형기) 팔에 두른 노란비닐 완장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 완장의 위력은 어느 시대에나 유효한가 보다. 고작 동네 저수지 관리인의 완장을 차면서부터 가지는 그 작은 완장의 권력을 가지고 오만방자 함이 극을 달할 때 선한 사람들은 당하는 환경에 숙달이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환경이 살벌한 세상이 되면 수동적인 대다수 사람들은 본인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버리게 되고 순식간에 수동형 인간이 되고 만다. 이러한 환경의 ‘완장문화’ ‘군림문화’에 기죽은 국민들의 슬픔에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생겨난 줄서기의 슬픔이다. 언제 우리가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에서 신분증을 보여주며 줄서기를 해야 된다는 사실에 생각이나 해 본적이 있는가! 언제나 가계나 마트에 가면 무슨 물건이든 구매할 수 있는 자유민주국가에서 어쩌다가 사회주의적 배급형 줄서기를 시험하는 국가가 되는듯하여 더 슬프다. 내가 원해서 공공의 패행를 주지않기 위해 자발적 줄서기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직접 자신이 약국에 나가 나의 신분을 밝히고 그것도 한정된 개수만 구매할 수 있는 준자뱔적 줄서기를 해야 하다니 정말 속상하고 자존심이 상한다, 여기도 완장이 하나 늘어났다.

 

정말 갑자기 변한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들은 머리라 혼돈에 가득 차 있다. 인정 많던 민족이 점점 각박해지고, 하나의 민족이라 자부하던 민족이 이젠 좌와 우로 갈라지고 이젠 남을 믿을 수 없어 경계하는 눈초리, 신고와 고소, 고발이 쉽게 입에서 나오는 세상에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문화를 접하고 있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세상이, 사람이 무섭다. 길거리에서 만나 사람들은 정말 편안하지가 않다. 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걷다 보면 주위에는 온통 완장을 찬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본다. 무슨 시민단체(NGO)는 왜 그리도 많은가! 원래의 시민단체의 정의는 사회 공공의 이익과 보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인 모임을 갖고 그 목적에 따라 활동하는 모임이면 실제로는.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수반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모임이다.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의 활동영역에 따른 분류로 보면 정말 다양하다. 이들 단체에도 장이 있고 완장이 있다. 이들의 완장은 실제고 알고 보면 공공의 목적, 자발적인 모임, 비정부, 비영리가 아니다. 다들 완장문화에 편성한 군림문화로 변해 있다는 것에 대해 가슴 아프다. 대다수의 단체들은 활동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금, 혹은 보조금을 원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관변단체화 되길 원한다. 그래야 완장에 급여를 받고 생활해 간다는 사실은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의 단순하게 분야별만 보면 환경 NGO, 인권 NGO, 여성 NGO, 복지 NGO, 소비자권리 NGO, 교육/연구 NGO, 청소년 NGO, 의료/보건 NGO, 주택 NGO, 개발 NGO, 노동 NGO, 국제원조 NGO, 빈곤구제 NGO, 교통 NGO, 평화 NGO, 문화/예술/체육 NGO, 권력감시/부정부패방지 NGO, 모금 NGO, 경제정의 NGO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정말 많다. 또한 거버넌스(협치)는 정부와 시민단체 또는 민간기업 등이 서로 협력함으로서 국가 및 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협치의 기구라고 하지만 이들은 정부의 꼭두각시화 되어 이들이 더 큰 완장이 되었다. 하지만 진정 이들은 무슨 목적 때문인가! 정말 사회 정의를 위해, 남을 위한 희생은 진심인가! 이들의 활동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완장을 버리고 원 취지대로 활동했으면 하는 적극적인 요구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정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인권이면 북한의 인권에 대해 최우선적인 활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장을 벗어 던지고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바꿔가야 한다. 원래의 취지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준자발적, 수동적인 활동으로 완장을 찰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어야 아름답다. 공공을 위한 줄서기 얼마나 아름다운가! 차를 기다리는 자발적인 줄서기, 표를 사기 위한 줄서기,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줄서기는 자발적이다. 공공을 위한 자발적, 본인의 정보도 없이 기다리는 아름다운 모습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식 줄서기이다, 마스크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 본인의 신분(정보)까지 밝혀야 하는 사회주의적 준줄서기의 시험은 아름답지 못하다, 정말 이것은 국민을 바보형, 수동적 준자발적 줄서기라서 더 서글프다.

 

작든 크든 권력을 쥐면 업무를 벗어난 부분까지 사용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물적 근성을 만키우는 사회는 결코 성공하지 못하고 망한다. 진정한 완장은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성실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 자리자체를 자기 개인의 것으로 착각하여 개인이 즐기고 사용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제 완장문화에서 깨어나야 한다, 군림문화 안 된다.

 

완장을 찬 세력들이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통치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한 수단을 장기적으로 만들어가려는 수작일 수밖에 없다. MBCTV에서 미니시리즈 완장에서와 같이 완장시대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때늦은 후회는 하지 말아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의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필요함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권오은 기자 kwon78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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