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평양의 단군릉(陵)은 력사적 국보인가. 檀君의 虛와 實

기사입력 2020.04.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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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단군화상.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2004년 북한은 화첩 <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을 발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의 조선화보사가 발행한 월간 화보 <조선> 2004년 4월호는 "단군은 조선민족의 원시조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현명한 령도와 공화국정부의 민족문화보존정책에 의하여 주체82(1993)년에 평양시 강동군에서 조선민족의 시조인 단군과 그 안해의 유골이 발굴됨으로써 단군이 지금으로부터 5000여년전에 실재한 인물이라는 것이 확증되였다. 단군민족통일협의회는 김일성주석께서 단군릉발굴을 발기하시고 개건사업을 이끌어주신 10돐과 김정일령도자께서 이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여주신 9돐을 맞으며 단군의 자료들을 보여주는 화첩<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을 만들어 내놓았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말하는 '단군릉'의 '개건' 과정을 보면 1)1993년 1월 김일성이 발굴 방법 제시. 2)1993년 2월 단군 유골과 유물 발굴. 3)1993년 9월 27일 김일성이 능터 결정 및 설계 방법 제시. 4)1994년 7월 6일 김일성이 '최종형성안' 검토(7월 8일 김일성 사망) 5)1994년 10월 11일 ‘단군릉개건준공식’의 순(順) 입니다. 이 ‘성역’에는 '단군릉, 단군릉개건기념비,단군릉기적비, 단군의 네 아들상(부루.부소.부우.부여), 단군의 측근신하상(팽우.고시.해월.비천생.신지.치우.주인.여수기), 망부석, 문기둥, 상돌과 돌향로, 돌범' 등이 있습니다. ‘릉’(陵)의 안에는 "단군과 그의 안해의 유골이 안치된 무덤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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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전경.

 

 <조선대백과사전(5)>의 “단군신화” 설명 중에는 "단군은 평양을 도읍으로 삼아 왕이 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하였다. 그는 1,500년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산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때 나이가 1,908살이였다고 한다. 최근 평양시 강동군에 있는 단군릉에서 단군의 유골이 발굴되고 그 년대가 밝혀짐으로써 단군이 신화적인물이 아니라 실재한 력사적인물이라는것과 함께 반만년에 걸치는 조선민족사의 유구성이 뚜렷이 확증되고 그에 따라 신화의 유산적가치도 력사적사실들에 기초하여 확인하게 되였다."라는 문장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 인용문의 사실 여부는 구태여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북한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단군과 단군의 안해(남한:아내)'의 '유골'이 평양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민족의 발상지 평양>(사회과학출판사,2000년)에는 "단군은 평양에서 태생한 실재한 력사상의 인물"이고, "민족의 성지로서의 평양의 력사적 지위는 무엇보다도 조선민족의 발상지, 우리 겨레의 동질성을 이룩한 중심지, 민족문화의 발원지"(4쪽)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북통일이 되면 수도는 자동적으로 평양? 역사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 '단군릉'의 '개건' 의의에 대해, 북한은 "단군이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1993년 현재) 5011년전에 태여난 실재한 인물이였다는것이 밝혀지게 되였다."고 했습니다. 과연 '단군릉'에 안치된 시신이 진짜 '단군 할아버지'일까? 김일성 사망(1994.7.8) 이후 1994년 10월 29일 개건된 ‘단군릉’ 선전은 특히 매년 11월이면 가관입니다. 북한은 이 글의 맨 아래에 있는 <조선중앙통신> 기사 등을 통해 끝없이 선전하고 있습니다. ‘단군릉’의 진짜 진실을 북한 역사학자들이 밝혀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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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무덤칸.

 

다음은 <조선중앙통신> 기사입니다. // “력사적 국보 단군릉 (평양 10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 조선의 단군릉은 력사적국보이다. 평양시 강동군에 위치한 단군릉은 단군릉개건기념비구역과 석인상구역 및 중심구역으로 이루어져있다. 석인상구역은 단군의 아들과 측근신하들을 형상한 조각상들이 배치되여있는 구역으로서 돌계단 좌우에 전개되여있다. 중심구역의 안에 한단을 높인 기단이 있고 이 기단우에는 무덤무지를 중심으로 하고 돌상과 돌향로, 돌범상과 망주석이 배치되여 있다.  

 

무덤무지는 정4각추형으로서 밑단에서부터 우로 올라가면서 차례줄임하여 높이 쌓은 돌무덤무지이다. 무덤무지의 네모서리에는 각각 한쌍씩의 돌범상이 있다. 중심구역의 제일 바깥네모서리에는 고조선시기의 전형적인 무기였던 비파형단검을 형상한 검탑이 세워져있다. 무덤칸바닥에는 2개의 관대가 남북방향으로 나란히 놓여있고 그 우에는 단군과 그의 안해의 유골이 있는 관이 각각 놓여있다. 무덤칸 정면에는 단군화상이 걸려있다. 단군조선시기의 발전된 문화와 정치, 경제, 군사적위력을 보여주는 단군릉은 민족의 전통적인 무덤양식에 연원을 두고있는것으로 하여 민족성이 매우 짙은 문화적재보로 되고 있다.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이 실재한 인물로 발굴고증되여 반만년의 민족사를 되찾게 된것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과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김일성주석께서는 구월산과 묘향산에 깃든 단군전설과 평양시 강동군의 단군릉에 관한 자료를 깊이 료해하시고 단군릉발굴을 발기하시였으며 단군릉발굴사업이 진행되여 그 자료들이 과학적으로 고증된 이후에는 몸소 단군릉을 찾으시여 유물들을 일일이 보아주시면서 학자들과 일군들이 단군과 고조선의 력사를 옳바로 연구체계화하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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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비석.

 

김정일동지께서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연구사업이 현대과학의 토대우에서 진행되도록 온갖 조건을 보장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단군이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1993년 현재) 5011년전에 태여난 실재한 인물이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83(1994)년 10월 29일 개건된 단군릉을 돌아보시면서 력사적 국보인 단군릉을 잘 보존관리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단군릉은 조선인민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는 귀중한 문화적재부로 전해지고있다.“// 

 

단군왕검에 얽힌 고조선의 건국신화!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을 건국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내세웠습니다. 단군신화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이며, 그 이후에도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 <응제시주>,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지금의 평양 “단군릉”은 없습니다. 북한 역사학자들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또한 평양 “단군릉”은 반드시 역사 속에서 살아져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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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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