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3·1 운동과 ‘3·1 인민봉기’ & 민족화합을 위한 기도

기사입력 2021.02.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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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34회 3.1절 민족화합기도회 초청장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아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 ‘3.1절’ 노래입니다. 3월 1일이 ‘3·1절’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남한의 ‘3·1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3·1 인민봉기’의 날이라고 합니다. 북한에선 3·1 운동을 남한과는 상반되는 계급혁명의 성격을 띤 ‘인민봉기’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1 운동을 ‘기념일’로 보지도 않으며, 3·1 운동 자체도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3·1 운동’! [“3·1 운동(기미독립만세운동, 기미독립운동, 삼일만세운동) :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일어난 거국적인 독립만세운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중 서울에 있던 20여 명은 2월 28일 밤 종로 재동 손병희의 집에서 최종 회합을 가지고 거사 계획에 대한 마지막 검토를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조선총독부의 헌병·경찰의 정보망도 사전에 탐지하지 못할 정도로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3월 1일 정오 경부터 민족대표 33인 중 29인(길선주·김병조·유여대·정춘수 등 4인은 지방에 있었으므로 불참)은 서울 인사동 태화관(泰華館)에 모여 독립선언 시각인 오후 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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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인민봉기 주요지역도-북한 조선대백과사전 13.

 

⇒ 한편 최린(崔麟)은 태화관 주인 안순환(安淳煥)에게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민족대표 일동이 여기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나서 축배를 들고 있다고 통고하게 하였습니다. 이 통고를 받은 일본경찰대 80여 명이 즉각 달려와 태화관을 포위하였다. 이 때 민족대표들은 독립을 선언하는 한용운韓(龍雲)의 간단한 식사(式辭)를 들은 후, 그의 선창(先唱)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한 뒤 의연하게 일본 경찰에게 연행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1 운동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념과 계급을 초월하여 참여한 전 민족적 운동이었습니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대항하여 무력 저항의 모습을 띠기도 하였으나, 비폭력 원칙에 따라 진행된 시위(示威)는 세계사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3·1 운동은 즉시 독립을 가져오지는 못하였으나,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지고 이후 지속적인 민족 운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만세 시위에 참여한 학생, 지식인, 노동자, 농민 등은 이후 대중 운동을 통해 민족 운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3·1 운동은 공화주의에 바탕을 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졌으며, 국외에서 독립군의 무장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데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일제가 식민지 통치 방식을 무단 통치에서 이른바 문화 통치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3·1 운동은 국제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중국에서는 제국주의와 군벌에 반대하는 5·4 운동이 일어났으며, 식민지 상태에 있던 아시아 각국의 민족 운동에도 커다란 자극을 주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3·1 운동!

 

북한의 ‘3·1 인민봉기’! 북한 <조선말대사전(2)>은 “봉기”를 “①벌떼같이 세차게 일어나는 것. ②낡은 사회에서,《외래침략자나 반동적인 통치계급을 반대하여 인민대중이 들고일어나는 대중적 투쟁.》을 비겨 이르는 말. ∥ 무장~. 4.19인민~. 광주인민~. 봉기하다[동](자). 봉기되다[동](자).” 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은 ‘3·1 운동’을 “<3·1 인민봉기>를 거족적인 사회운동으로 이르는 말. /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반일애국정신을 온 누리에 자랑스럽게 시위한 거족적인 전민반일항쟁이였습니다. (장편소설 <력사의 새벽길> 하)”로 풀이했고, “3·1 인민봉기”는 “주체8(1919)년 3월 1일에 폭발한 전 민족적 반일봉기. 일제의 10년간의 야만적인 <무단통치>하에서 모진 수모와 학대를 받으며 살아온 조선 민족의 쌓이고 쌓인 울분과 원한의 폭발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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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 및 로씨야 연해주지방 동포들의 3·1인민봉기 주요지역도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3·1 인민봉기’에 대해 김일성이 “처음으로 반제민족해방투쟁에 참가하신 뜻깊은 사변”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3·1 인민봉기를 통하여 찾은 철의 진리”라는 제목의 글에서 “3·1 인민봉기를 통하여 조선 인민은 반제민족해방투쟁에서 승리를 이룩하자면 반드시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 혁명적당의 령도 밑에 옳바른 전략전술에 기초한 조직적인 투쟁을 벌려나가야 한다는 철의 진리를 깨닫게 되였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1919년 3월 1일 “전 민족적인 대중봉기”가 일어나자 당시 어리던 김 주석이 시위 대열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고 선전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3·1 운동! 정부가 100주년을 맞는 2018년 3·1절에 맞춰 남북 대표단이 함께 열차로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를 방문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고위 당국자가 밝혔었습니다. 이 당국자는 “지난 3일 3·1절 100주년 행사를 위한 기념사업추진위원회(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식 발족함에 따라 관련 사업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며 “관련 부처에서 공동 방중 계획을 연초부터 검토해 왔다”고 말했었습니다. 헌데 2021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卓上空論이었습니다?

 

그동안 국내외 많은 단체들과 한국인들, 외국인들까지도 3·1운동을 제대로 평가하고 기리기 위해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3·1절 민족화합기도회]가 그 중 하나입니다. 1986년 정근모(鄭根謨/1939~) 박사가 ‘민족화합(National Reconciliation)을 위하라는 소명’을 받고, 1987년 초에 미국에서 귀국하여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 설립자인 최태섭(崔泰涉/1910~1998)회장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벽산 그룹 김인득(金仁得/1915~1997) 전 명예회장 · 이한빈(李漢彬/1926~2004) 전 경제기획원 장관 · 서영훈(徐英勳/1920~2017)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1987년 3월에 ‘민족화합기도운동’을 발기하여 1988년 3월 1일 종로성결교회(현 삼성제일교회)에서 [제1회 3·1절 민족화합기도회]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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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민족화합기도회 발기인 정근모 박사와 필자.

 

제34회 3·1절 민족화합기도회는 2021년 3월 1일 10시 강남구 삼성동 삼성제일교회에서 열립니다. ‘민족을 가슴에 품고 화합하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진행될 기도회는 주관이 민족화합기도후원회(대표회장 정근모 장로) 등이고, 주최는 국가조찬기도회 등 입니다. 초청장에는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라와 분열된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초일류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제34회 3·1절 민족화합기도회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라고! ‘민족화합’은 한반도, 한민족 모두의 宿願입니다. ‘민족을 가슴에 품고 화합’하는 기도회가 되길 素望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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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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