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그리운 금강산(金剛山) & 한민족의 금강산

기사입력 2022.09.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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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의 가을 풍경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아픔이 남아있는 비무장 지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생태적 자원을 그대로 간직한 곳! 이곳이 ‘평화의 길’로 조성이 돼서 70년 만에 시민들에게 문을 열었습니다. 비무장지대를 관광 자원으로 탈바꿈 한 'DMZ 평화의 길 테마노선'이 열렸습니다. 여기서 걸어가면 비무장 지대와 바로 맞닿은 삼대교 통문이 나옵니다. 삼대교 통문은 민간인에게 처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여기서 2.6km 떨어진 곳에는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이 있습니다.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이름의 양구 코스는 천혜의 비경으로 불리는 두타연을 지나 삼대교 통문까지 이어지는 17km 구간입니다. 3년 만에 다시 열린 DMZ 평화의 길! 최근 이 비무장 지대가 '평화의 길'로 조성이 돼서 70년 만에 시민들에게 문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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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한반도의 금강산(金剛山)! 그리운 금강산! 가곡 “그리운 금강산”!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 만 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몇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 아래 산해 만리 보이지 마라./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한상억 작사/ 최영섭 작곡) 


“폭포수는 은절구통같이 봄절벽을 찧고/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로 청산을 재도다/ 달빛은 희고 눈빛도 희며 천지도 모두 희고 / 산도 깊고 물도 깊고 나그네 근심 또한 깊도다.”- 금강산을 찾았던 김삿갓의 절경(絶景)에 대한 노래입니다. 이런 감탄사의 메아리가 태고(太古)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디 그 뿐 인가요! 산(山)자락엔 해금강과 삼일포가 또한 절경이고, 거기에 장전항이 있습니다. 


여기서 2008년 7월의 금강산을 회상해 봅니다. 지금은 고성항이라고 더 많이 불리우는 장전항은 금강산 첫 관광이 있었던 1998년과 달리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군부대가 있던 곳에 금강산패미리비치호텔이 자리잡는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갖춰졌고, ‘금강산해수욕장ㆍ고성항횟집ㆍ해금강호텔’로 이어지는 해변은 산책로로 제격이고, 특히 비치호텔에서 바라보는 산과 바다는 조화옹(造化翁)의 걸작품이었습니다. 식당 ‘풍악’과 편의점 ‘금강봉사소’도 관광객에게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금강산해수욕장은 황혼의 아름다움과 어둠의 아늑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날 저녁 해수욕장에서 물속을 거닐었고, 다음날 새벽 5시 40분 쯤 방을 나섰습니다. 해변으로 내려와 해금강호텔 쪽으로 가려다가 모래사장으로 향했습니다.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그만 정자인 영락정(사진)에서 본 사위(四圍)의 풍광은 영롱한 이슬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날 저녁 금강산호텔(사진)에서 금강산예술소조 가무단 공연을 관람하고 비치호텔에 도착했는데, 금강산골프장 관리인이 같은 호텔에 투숙한 여자 관광객이 새벽에 피살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문득 민통선에서부터 이어져 있는 연두색 펜스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북측의 규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가이드의 주의사항도 생각났습니다.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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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 금강산

 

1998년 11월 18일 시작된 금강산관광은 남북 분단사에서 가장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업이었습니다. 이 사업은 1989년 1월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이 방북하여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하면서 물꼬가 트였고, 마침내 11월 18일에 금강호가 첫 출항을 했습니다. 그런데 관광 초기엔 유람선을 타고 금강산 앞바다에 위치한 장전항까지 가서, 낮에는 소형 선박으로 육지로 이동하여 관광하고, 밤에는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유람선으로 돌아와 숙박하면서, 4박 5일간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금강산에서 만난 아주 똑똑한 북측 사람들, 많이 상냥해진 북측 봉사원들, 열(熱)과 성(誠)을 다하는 현대아산조장(가이드)들, 관광을 시작할 때 모두 나와 즐겁게 인사하는 현대아산 직원들, 온정각 앞마당에서 떡메를 쳐 인절미를 만드는 남정네...그 많은 남과 북의 사람들, 멀리서 돈 벌러 온 조선족 동포들, 그들은 마침내 일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높이 1,638m. 금강산은 동해에 임박한 태백산맥 북부의 아름다운 명승지로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봉인 비로봉(1,638m)을 중심으로 주위가 약 80㎞에 이르는데, 강원도의 회양·통천·고성의 3개 군에 걸쳐 있으며, 면적이 약 160㎢에 이릅니다. 금강산의 ‘금강(金剛)’이라는 말은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해동에 보살이 사는 금강산이 있다.”고 적힌 데서 연유되었습니다. (楓嶽)이라는 속칭이 있으나, 승려들이 『화엄경』에 근거하여 금강산이라 불렀기 때문에 이 이름이 고정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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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해수욕장에서 (필자)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강·개골(皆骨)·열반(涅槃)·풍악·기달(怾怛)의 다섯 가지 이름을 들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금강’과 ‘열반’은 불교의 용어라 하고, 이 밖의 이름은 금강산이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경색이 달라져 판이한 정취를 주기 때문에 계절에 따른 명칭이 있다고 하였습다다.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이라 하고,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깔리므로 봉래(蓬萊)라 하고, 가을에는 일만이천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므로 풍악이라 하고,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지고 나면 암석만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의 호칭이 있으면서도 일반적으로 ‘금강산’으로 통칭된 것은 이 산이 불교의 영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가지면서 남북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급변했습니다. 이후 9월에 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 결과 합의문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등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재개의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2018년 11월 18일 금강산 현지에서 금강산 관광 주사업자인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가 주관한 금강산 관광 20주년 남북공동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끝끝끝! 김정은은 지금이라도 당장 한민족 모두에게 돌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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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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